Interview
한상철 (불싸조) 
Sangchol Han (Bulssazo)

불싸조는 음반 발매 당시 (2011년) 카세트로만 발매했던 3집 음반 "*뱅쿠오: 오늘밤 비가 내릴 모양이구나. / *첫번째 암살자: 운명을 받아 들여라."을 지난 2017년 12월 만선에서 디지털 음원을 공개, 판매했다.

불싸조의 음반은 대부분 절판되어 구하기도 힘들고, 3집 음반의 경우 카셋트테입 포맷으로만 발매되어 더더욱 감상이 쉽지 않았던터라, 만선에서 가장 많이 판매되는 음원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후 유저가 모 사이트에 이 음원을 무단배포하는 일이 있었고, 이에 불싸조는 음원 판매를 중지하게 된다.

이후 사건이 마무리 되고, 판매 중지되었던 3집에 더해 2집 음원까지 만선에서 공개하며, 불싸조의 기타리스트 한상철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는 이메일 만으로 진행되었고 한상철이 보내온 답변 그대로 아무런 수정 없이 게재한다.

아직 모든 음반을 공개하지는 않았다. 온라인 상에 음원을 풀지 않고 듣기 쉽지 않게 하는 이유는.
불싸조 페이스북 배경에 필립 글라스의 말을 하나 써넣었다. "세상에 좋은 다른 음악들이 무척 많이 있으니 다른 음악을 들으라"는 내용인데 우리 역시 굳이 우리 음악까지 듣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에게 까지 이것이 도달하지 않았으면 해서 이런 방식을 채택했다. 이걸로 금전적인 수익을 크게 내는 것 역시 아니기도 하고 통제가 가능한 범위라 생각해서 그렇게 했다. 한번은 한 두명이 들어도 크게 상관없다고 말했다가 어느 음악평론가님께서 그럴거면 왜 음반을 내느냐며 혼낸 적이 있는데... 글쎄...

온라인에 음원을 팔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만선의 경우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 그리고 수익 분배 면에서도 만족스러워 하게 됐다. 우리는 과거 1, 2집을 일반 유통 경로로 음원서비스 한 적이 있다. 그때의 수익은 정말 미미했는데 만선에서의 수익은 그럭저럭 만족하고 있다.
3집 음원이 무단배포되는 일이 있었고, 이에 음원 판매를 아예 중단했었다.
했던 얘기를 자꾸만 반복하게 되는데-
우리 정도의 작은 규모면 어느정도 통제가 될 줄 알았는데 버젓이 인터넷 상에 공유되고 있는 것을 보고 화가났다. 고소를 진행했다. 자세한 합의 사항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
음원 서비스를 다시 재개하는 이유는.
몇몇 분들이 페이스북 메신저와 메일 등으로 개별구매를 요청해왔고, 이제는 화가 많이 가라앉았기 때문이다. 음원이 공유될 당시 가장 화가났던 것은 그동안 음원을 돈주고 구입한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였다. 그러니까 이게 누군가가 무료로 풀어버리는 순간 내가 기존 구매자들에게 쌩돈을 강탈한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게 가장 좆같았다. 그래서 더이상 판매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럼에도 구매하겠다는 분들이 계속 계셔서 마음을 바꾸게 됐다. 우리 음악이 널리 알려지지 않아도 좋으니 제발 친구들에게 파일을 보내면서 추천하지 말것을 부탁드린다.
외부의 음원 사용 요청이 있어도 대부분 거절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냥 앨범을 통해 곡을 들었으면 하는 단순한 이유인데, 반스(Vans) 같이 우리가 많이 애용하고 좋아하는 곳에서는 사용하게끔 하고 있다. 몇년 전인가... 현대미술관인가 하는 곳에서 인디 관련 전시를 하면서 우리 노래가 사용됐다는 얘기를 듣고 화가나서 내려줄 것을 요청했다. 이후 담당자에게 연락이 와서 통화를 했는데 자꾸만 우리 밴드 이름을 '불사신'으로 불렀다. 그 부분을 따로 정정해주지 않고 그냥 가만히 말하는 것을 듣고 있었는데 밴드 이름도 정확히 모를 정도로 우리에게 무관심한 곳에서 왜 음원을 상의없이 사용하는지 아직도 그 저의를 모르겠다.
"어차피 우리는 큰 밴드가 아니고 내 의사가 그들에게 일일이 받아들여질 확률은 매우 적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한 차라리 하지 않는편이 낫다고 생각해 거절하고 있다."
인터뷰도 거의 안한다.
인터뷰를 하고와서 나온 글을 읽으면 내가 했던 말들이 일부 잘못 전달되어 있고, 심지어 인터뷰 당시 내가 무엇에 대해 얘기하면 상대방이 거기에 대해 모른다고 했다가 정작 인터뷰 글이 나오면 마치 이전부터 자기도 알고 있었던 것처럼 적어놓은 경우도 있고... 일전에 패션잡지 같은 데에서 인터뷰를 하려 했을때는 옷 사이즈를 물어봐 이게 뭔가...했는데 거기서 제공하는 옷을 입고 사진을 찍는 거였다. 그게 너무 하기 싫어 죄송하다고 말하고 중간에 나왔는데 그냥 애초에 이런저런 문제들은 어떻게든 생기기 때문에 아예 인터뷰를 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EBS 공감이나 인터넷 매체에서의 공연 역시 마찬가지인데 어차피 우리는 큰 밴드가 아니고 내 의사가 그들에게 일일이 받아들여질 확률은 매우 적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한 차라리 하지 않는편이 낫다고 생각해 거절하고 있다.
공연장에서의 사진/영상 촬영도 꾸준하고 유난스럽게 금지하고 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옆에서 누군가가 핸드폰이나 카메라로 촬영하는 것이 있으면 신경이 많이 쓰이고 사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입장료를 내고 공연장 내에 있는 사람들과만 공연을 공유하고 싶어서이다. 만일 우리가 엄청 큰 규모의 밴드라면 이런 것이 컨트롤 되지 않았겠지만 지금 정도면 일정 부분 컨트롤 할 수 있겠다 싶어서 그렇게 하고 있다. 페스티벌에서도 촬영하지 말아달라는 내용의 글귀를 배경에 걸어놓고 공연 했다. 사실 제대로 지켜질거라는 기대를 크게 하지 않았는데, 그 글귀를 봤는지 페스티벌 안전 요원분들께서 마치 물만난 물고기처럼 엄청 과격하게 통제해주셨다고 한다. 공연을 봤던 누군가는 중고등학교 수련회에서 교관들이 아이들 혼내는 것과 비슷한 분위기였다고도 말했다.
2집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향뮤직 정보에 따르면 1집 발매일은 2005년 5월이고 2집의 발매는 2006년 9월이다. 꽤 빠른 시간 안에 두 개의 앨범을 발매했다. 두 음반을 합치면 33트랙이나 된다. 1집 이후 새로운 밴드 멤버들을 찾아 헤맨 것치고는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곡들을 만들고 녹음했다.
첫번째 앨범이라고 알려진 [Furious Five]는 엄밀히 말해 데모, EP인데 곡 수와 러닝타임이 길어 회사에서 앨범가격으로 팔아야한다고 해서 풀랭스 앨범처럼 발매됐다. [Furious Five]와 [너희가...] 앨범 모두 아이디어는 비슷한 시기에 나온 것들이고 빨리 정리한 것들이 먼저 녹음됐다. 그러니까 아이디어가 먼저 있었고 그 다음에 사람이 들어온 것이다. 심지어 [너희가...] 앨범의 베이스 역시 내가 거의 녹음하고, 박현민 형이 일부 녹음한 것도 있다. 어떤 곡이 내가 녹음하고 어떤 곡이 박현민 형이 녹음했는지는 정확히 기억 나지 않는다.
속옷밴드의 박현민이 프로듀스를 맡았다고 소개되어있고 지금까지 협업이 지속되어오고 있다. 작업방식은 어떠했나. 직접 프로듀스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직접 프로듀스 하지 않는 이유는 너무 많은데... 일단 기술적인 문제들이 있겠고 다른 밴드들과 마찬가지로 스스로의 관점을 못믿어 남의 눈을 빌리는 게 아닌가 싶다. 실제로 프로듀서의 의견으로 뭔가를 더하거나 빼거나 한 것들이 많은데 아마 우리끼리 했다면 그런 일이 없었을 것이다. 박현민 형에게 받은 도움은 너무 많은데... 단순히 아이디어나 기술적인 부분 이외에도 오히려 우리가 이 정도면 됐다고 말해도 뭔가 만족하지 못해 계속 더 작업량을 늘리기도 하고... 무엇보다 우리가 어떻게 녹음하고 무엇을 하려 하는지를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고 형 역시 다른 뮤지션들의 앨범 프로듀스를 많이는 안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 계속 부탁하고 있다.
2집 그리고 3집 음반의 사운드에 대해서 밴드와 프로듀서의 지향점 혹은 컨셉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어떤 소리의 음반을 만들고 싶었나.
지향점은 크게 없었고 그동안 만들었던 것들을 완료된 순서대로 정리하는 차원이었다. 듣는 사람들이 음반을 큰소리로 들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 정도를 가지고 있었다. 처음 녹음할때부터 지금까지 지키고 있는 원칙은 하나 있는데, 고생스러워도 원테이크로 레코딩하는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애초에 토토나 스틸리 댄 같은 앨범을 만들 생각이 아니라면 잘라서 녹음해 프로연주자들처럼 보이게 편집하는 행위가 -만드는 입장에서는- 크게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의식해서 자연스러운 앨범을 만들 생각을 한 것은 절대 아니고-그런건 평생 연주만하고 사는 재즈 뮤지션들 정도는 되어야 가능한 것이고- 최선을 다해 연주하고 있는데 삐그덕거리고 울렁대는 에너지를 만들고 싶었다. 여기에 원테이크 이외의 대안을 찾을 수 없었다. 박현민 형은 가능한 처음 의도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다양한 방향을 제시해줬다.
"최선을 다해 연주하고 있는데 삐그덕거리고 울렁대는 에너지를 만들고 싶었다."
이 음반을 녹음할 때 사용한 악기와 장비에 대해서 설명 부탁한다.
이것저것 얘기를 할 수도 있겠지만, 몇년 전 어떤 뮤지션이 인터뷰에서 무엇을 사용했고 뭘 어떻게 작업했고 하고 말하는 것에 대해 별로라는 식으로 비아냥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나도 그 편이 나은 것 같아서 그냥 입을 다물려 한다.
최근까지도 멤버 변동이 종종 있었다. 독재적인 밴드 운영 때문은 아닌가.
보통 녹음을 하고 다들 팀을 나갔는데... 이것이 나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정리를 한번 하면, 첫번째 앨범 녹음했던 정주현은 녹음하고 다음 주에 군대에 들어갔고, 베이스를 쳤던 조윤석님 역시 시골로 내려가셨다. [너희가...]에서 드럼을 녹음했던 김치완님 역시 녹음하고 곧바로 유학을 가셨다. [뱅쿠오...]를 녹음했던 고영일은 의견차이로 그만뒀는데... 뭐 다른 이유들이 있을수도 있겠지만 고영일은 좀 더 진지하고 열심히 밴드를 하고 싶어했고 내 경우 밴드보다 개인의 삶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시간이 날때 설렁설렁하자는 생각이 컸다. 내 기억에 결정적인 이유는 이것 때문이었던 것 같다. 서로 연락은 가끔하고 있고 고영일은 지금 여러 상업 음악작업들을 하고 있다.

[너희가...]를 발매하고 나서부터 고등학교때 함께 밴드부를 했던 서명훈과 시작했다. 명훈이와는 지금까지도 계속 같이 하고 있는데 명훈이가 사람이 좋아서 계속 같이해주는 것 같다고 주변에서들 말한다. 훌륭한 연주자이기도 한데 실제로 내가 뭔가를 가져오거나 논쟁이 생기면 명훈이가 중간에서 교통정리를 잘해준다. 명훈이가 따로하는 nuh도 생각보다 앨범이 좋아서 몇몇 곡은 계속 들었다. [한국힙합]을 녹음한 현 드러머 김선엽 역시 훌륭한 연주자이면서도 그렇게 밴드에 매달리는 성격이 아니라서 그점이 마음에 들어 계속 함께하고 있다. 김선엽은 현재 강원도 속초에 거주중이다.

편집자 주 : 불싸조의 베이시스트 서명훈은 nuh 라는 이름의 솔로 프로젝트를 병행하고 있다. 2016년 음반 [Life] 를 발매했다. 향뮤직 음반 정보 링크
2집 음반은 최근작보다 더 부드럽게 느껴진다. 드림팝?의 느낌까지 나는듯하다. 당시에 썼던 곡들과 지금 쓰는 곡들은 본인이 느끼기에 어떻게 다르다고 생각하는지.
매 앨범마다 영향받은 것은 조금씩 달랐던것 같은데...10년 전인 그때는 프레드 아스테어와 진저 로저스 등이 출연한 헐리우드 뮤지컬 황금기 시절 레코드들을 정말 많이 사모으고 많이 들었다. 내 생각에 그것들에 대한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지금은 나도 내가 뭘하는지 모르겠는데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좋다.
"지금은 나도 내가 뭘하는지 모르겠는데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좋다."
최근에는 어떤 레코드를 주로 모으고 있는가.
요즘은 가지고 있는 음반들을 많이 팔고 있어서 일관된 방향으로 뭔가를 사지는 않았던것 같은데... 생각해보니 최근에 내가 90년대 뽕에 너무 취하고 싶어서 90년대 당시 이름만 보고 안샀던 국내 컴필레이션들을 사서 길에서 듣고있다. 최근에는 90년대 CF음악들을 모은 모음집인 [소프트 팝 컬렉션] 볼륨 2와 3, 그리고 [러브 올웨이즈] 시리즈 몇개를 샀다. 이것은 내가 웃길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사실이다. 그리고 원래 크리스마스 무렵에는 베이비페이스의 곡들을 많이 들었는데 이제는 베이비페이스의 곡들이 약간은 물려서 베이비페이스의 형제들이 만든 R&B; 그룹 애프터 7 몇장을 사서 겨울내내 열심히 들었다. 도태된 인간처럼 90년대에 계속 빠져 허우적대고 싶은데 아직도 90년대에 들을 거리가 너무 많다는게 행복하다.
곡, 앨범의 제목은 어떻게 짓는가.
따로 어떤 방법은 없고 그냥 주변에 있는 것들을 넝마주이처럼 주워 담은 것들이다. 실제로도 주변에 이것저것 쓸만한게 버려져 있으면 주워온다.
제목과 곡 사이에 어떤 관계나 의미가 있기는 한가. 성경 구절들이 유난히 자주 눈에 띄는데.
제목은 보통 공연 때 곡을 구분하는 용도로 암호처럼 적어놓았던 것들을 풀어놓은 수준인데... 분명 분위기나 기타 등등의 관계는 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할지를 모르겠다.

성경 구절들의 경우 명훈이는 계속 교회를 다니고 있고, 내 경우 교회는 안다니지만 여전히 성경과 그와 관련된 것들-이를테면 C.S. 루이스의 서적들-은 오가며 읽고있다. 성경은 잠이 안올때 머리위에 두고 읽다가 잠드는데 의외로 이 내용들이 머릿 속에 남겨져 있다. 초등학교때는 교회 성경퀴즈대회 1위를 해서 상품으로 성경 만화세트를 받기도 했다. 한국 교회에 대해 회의적인 편이지만 어렸을때 한번 세뇌가 되어서인지 이것들은-도덕과 교리와는 별개로- 여전히 삶에서 중요하게 작용한다.
1, 2집에는 지금보다 보컬 멜로디를 더 적극적으로 사용한 것 같다. 보컬과 가사에 대한 작곡가로서의 생각을 듣고 싶다. 가사를 공개할 생각은 없는지.
가사는 지금은 나도 기억이 거의 나지 않고... 내가 작곡가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기타치는 것이 재미 있어서 거기에 온전히 관심이 옮겨져 지금에 이르게 된 것 같다. 한글 가사는 쓰기 힘든것 같은데, 국내에 내가 좋아하는 곡을 만드는 뮤지션들은 많지만 의외로 내가 좋아하는 가사를 쓰는 사람의 수는 적은 것 같다. 굳이 예를 들면 조월 형을 최고의 리릭시스트라 생각하고 있다.
작곡가라기 보다는 기타리스트로의 정체성이 더 중요하다는 말로 이해해도 되나. 본인을 기타리스트라고 생각하나. 어떤 기타리스트가 되고 싶다던지, 어떤 연주를 하고 싶다던지의 기타리스트로서의 욕심, 이상향이 있나.
기타리스트라고 하기에는 내가 기타를 너무 못친다... 냉정하게 말해 태도나 능력 양쪽 모두에서 '취미 음악인' 정도의 호칭이 가장 적합한 것 같다. 내가 롤 모델로 삼는 기타리스트는 무척 많고 그것들을 따라하려 애쓰고 있다. 그것들을 따라하려 하는 이유는 어차피 내가 그 뮤지션들의 방식을 열심히 연습하고 따라해봤자 절대로 그 영역까지는 도달해낼 수가 없기 때문에 결국 이것이 내 방식대로 이상하게 왜곡/변질된다. 그런 점이 웃기고 매번 스스로 한계를 느끼게끔 만들지만 재미있어서 기타를 치는 것 같다.
기타를 많이 사모으고 최근에는 조립까지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장비 얘기하는 거 별로라고 얘기했지만, 지금 가장 즐겨 쓰는 기타, 이펙터, 앰프 하나씩만 간략히 설명해달라.
내가 원하는 사양이 그대로 팩토리 셋팅되어 판매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결국 내가 원하는 사양으로 이것저것 조합을 하는 정도인 것 같다. 기타가 많다기 보다는 궁금해서 한번씩 써보는 것인데 써보고 안맞는 것들은 팔면서 일반적인 뮬인(mule.co.kr+人)의 삶을 살고있다.

기타들은... 가지고 있는것들 다 비슷 비슷한 비율로 쓰고 있고, 이펙터는....사실 튜너를 가장 많이 밟는것 같다. 코르그의 피치블랙 제품을 사용한다. 앰프는 썬(SunnO))))의 콘서트 리드 헤드와 썬 8" X 6 캐비닛 조합을 사용하고 있다.
뮤지션으로서 큰 욕심이나 야망이 없다는 말을 자주 해 온 것으로 안다. 여전히 같은 생각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내가 그런얘기를 했었나... 다른 사람들이 야망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야망이 없어야 내가 더 지속적으로 재미있게 음악생활을 할 수 있다. 애초에 야망을 가져도 뭔가가 더 잘될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고, 만일 내가 야망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폐기처분하고 의식하지 않을 수록 나는 더 즐겁게 기타를 칠 수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인공지능 기술개발이 티핑포인트를 밟고 신의 영역까지 도달하는걸 보고 인간사회가 엉망이 되는 것을 지켜보다가 죽는 것이다.
사진  |  이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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